일상,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이다. 지겹다. 뭐 색다른 일이 좀 안 일어나나. 그런 생각이 조금이라도 들면 이 영화들을 보면 된다. ‘잠’과 ‘타겟’일상이 공포로 바뀐다. 이 영화들을 보면 무미하고 건조하고 반복되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좋은 날들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될 것이다. 한 가지 부작용은 잠자는 남편(만일 있다면)을 유심히 보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타겟: 고장난 세탁기, 고장난 일상
주변에는 중고거래의 달인들이 있다. 이들은 중고거래 사이트를 통해 자신이 쓰던 물건들을 용한 값을 받고 팔기도 하고 필요한 물건을 용케 발굴해 사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뉴스도 있다. 2021년 9월 천안에서 50대 남성이 중고거래에 나온 1천만 원 상당의 금팔찌 판매자를 살해하고 금팔찌를 빼앗아 달아났다. 2021년 10월 광주에서 중고거래 남자가 판매자 뒤를 밟아 비밀번호를 알아내려는 목적으로 집 앞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했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이런 사회면 기사를 잘 보지 않은 여자가 있다. 8월 30일 개봉한 영화 ‘타겟’의 수현(신혜선)이다. 인테리어 회사의 팀장으로 일하는 수현은 이사를 한다. 필요한 건 세탁기. 빠듯한 예산을 감안해 중고거래를 택한다. 그런데 고장난 세탁기가 왔다. 인생 첫 중고거래에서 삑사리가 난 것이다. 오냐 내가 가만두나 보자, 수현은 집념 추적으로 중고거래 판매자를 찾아내 그가 올린 게시글마다 사기꾼이라는 댓글을 남긴다. 그런데 점점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시킨 적 없는 음식이 배달되고 정체불명 남자가 찾아온다. 잠궈놓은 문이 열리고 컴퓨터가 멋대로 움직인다. 결국 사이버형사대 주 형사(김성균)가 수사에 나선다. 범인을 추적해 그 집안까지 들어가 김치냉장고를 여니 시체 한 구가 들어있다. 살인자다. 그 살인자가 수현을 조여온다. 스릴러다.
‘타겟’은 실화를 소재로 했다. 2020년 언론 보도로 알려진사기꾼 ‘그놈’ 일당은 6년 동안 중고 사기거래를 통해 약 50억 원을 빼앗았고 경찰 신고 피해자들에게 서슴지 않고 보복했다. 박희곤 감독은 사건을 담당한 경찰과 피해자 인터뷰 등을 통해 디테일을 완성해 나갔다.
이런 영화를 보면 늘 답답한 점이, 집안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데 왜 피신을 가지 않느냐는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나 한국영화나 주인공이 남자거나 여자거나 다 그렇다. 하긴 그러면 영화가 성립되지 않겠지만…. 시작은 신선했던 이 영화도 결국 전형적인 스릴러로 흘러간다.
#잠: 잠든 남편도 다시 보자
눈이 감긴 채 의식 활동이 쉬는 상태-잠의 사전적 의미다. 그런데 영화 ‘잠’은 그렇지 못하다. 잠들었으나 각성상태, 진단명으로는 ‘몽유병’이다.
현수(이선균)와 수진(정유미)은 신혼부부다. 당연히 킹 사이즈 침대에서 함께 잔다. 아기도 곧 태어난다. 옆에서 자는 것만 바라봐도 사랑이 뭉클거리는 시절. 그런데 아랫집에서 밤에 층간소음이 심하다며 항의를 한다. 왜? 둘이는 함께 잠들어 정답게 잘 뿐인데?
어느날 한밤중 수진이 눈을 떠보니 옆에 현수가 없다. 침대끝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남편. "오빠" 수진이 부르자 현수는 "누가 들어왔어"라고 한다. 밝은 다음날 현수에게 다시 물으니 그건 대본에 있는 대사라고 말한다. 현수는 아직 갈길이 먼 연극배우다. 현수 말처럼 그 대사는 대본에 있다.
다시 밤, 그리고 잠. 잠들었던 현수가 한밤중에 일어난다. 냉장고 문을 열고 날생선을 씹어먹고 달걀을 깨먹는다. 아그작. 달걀 껍질 깨지는 소리. 유난히 크고 공포스럽다. 날로 먹는 생선은 전어다. 그 광경을 수진이 본다. 아침, 현수는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병원에서 몽유병 진단을 받고 수진은 ‘둘이 함께라면 극복 못할 문제는 없다’라며 의기소침해진 현수를 북돋운다. 하지만 밤은 날마다 찾아오고 현수의 행동은 점점 공포스러워진다. 현수도 자기가 무섭다. 잠든 새 깨어난 자기가 가족을 해칠까 걱정 된다. 수진은 밤마다 딴 사람이 되어버리는 남편으로부터 아기를 지켜내야 한다. 수진 역시 제2의 자아가 튀어나와야 현수를 막을 수 있다.
영화 ‘잠’은 3개월 동안 일어나는 일을 3장으로 나눠 보여준다. 점점 고조되는 긴장과 공포는 3개월의 마지막날 밤 12시에 정점을 찍는다. 음향은 제3의 배우, 밤마다 벌어지는 공포감을 극대화한다.
집이란 가장 편안한 공간이며 잠이란 곤한 몸과 정신이 비로소 온전히 쉬는 시간이다. 영화 ‘잠’은 이 공간과 시간을 뒤흔들어 놓는다. 한국영화 장르물에서는 보지 못한 신선한 소재. 조던 필 감독의 ‘겟아웃’이나 ‘어스’에서 느꼈던 낯선 공포감을 느끼게 한다.
‘잠’은 봉준호 감독 연출부 출신인 유재선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이미 지난해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대돼 호평을 받았다. 봉 감독은 "최근 10년간 본 영화 중 가장 유니크한 공포 영화이자 스마트한 데뷔 영화"라는 감상평을 냈다. 이선균과 정유미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 3편에 함께 출연하면서 이미 합을 맞춰왔다. 이번 영화 출연에는 봉 감독의 추천이 컸다는 후문이다. /유청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