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 Views

[박인기의 Homo Auditus] 생밤

작성자 관리자 날짜 2023-09-10 10:50:17 조회수 98

 

외우 우공(于空)이 앙성 상림원 숲에서 밤을 주워서 예쁜 상자에 담아 보냈다. 저 윤기 서린 밤톨의 표면들을 여름과 가을의 양광(陽光)은 어떻게 비집고 들었을까. 그 비집고 드는 소리 누가 들었을까. 그리하여 이렇듯 먹을 수 있는 생밤으로 여물어 갔겠지. 그 여물어 가는 소리를 상상해 본다. 오묘 할진저!

이 밤들이 벌어져 어둠 속 자유낙하 할 때, 대지를 노크하던 소리, 듣는 이 있었으리. 떨어지는 밤톨들마다 작은 천둥 하나씩을 다 안에 품고 내려왔겠지. 귀 기울여 들으려 마음먹어 본다. 어느 순간 고요가 보인다. 고요는 형상이 아니고, 소리의 일종이어서 고요가 들린다고 해야겠지만, 아주 정밀한 소리는, 아주 정밀한 적막은 왠지 보인다고 해야 할 듯하다.

그것은 듣기의 극한에서 만나는 소리의 현신이려니, 그러니 나는 들으려 한다. 말하려고 하면 들을 수가 없다. ‘듣는 인간이 먼저이다. ‘말하는 인간이 먼저 있고 그다음에 그걸 듣는 인간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소통 행위의 숨은 회로를 모르는 데서 생긴 오해다. 인간의 뇌는 그냥 백지상태에서 아무 말이나 하는 것이 아니다. 들은(보는) 바가 있어야 그걸 가지고 말을 한다.

 

/이지은 리포터

 

인간의 언어 발달 과정도 듣기 활동(activity)이 먼저 발달하고, 이어서 말하기 활동이 발달한다. 그래서 교과서의 제목도 말하기·듣기가 아니라 듣기·말하기이다.

깊어가는 가을밤, 세상 미디어의 온갖 소리를 멀리하고, 나도 고향 산간 마을에 왔다. 고요 적막 속 뒷마당 밤나무에서 밤 떨어지는 소리 듣는다. 우주의 두드림이 내 귀에 닿는 듯하다. 그렇구나, 인간은 듣기를 먼저 자연에서 배우고, 말하기를 사람에게서 배우는구나.

내일 아침 일찍 저 밤을 주우러 나도 뒤뜰에 나가야겠다. 내 자랄 적에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얘야, 생밤은 입으로 먹는 것이 아니고 귀로 먹는 거란다. 그렇구나, 그렇구나! ‘듣는 인간의 듣는 감수성을 옛사람들은 저렇게 아름답게 간수했구나. /경인교대 명예교수·한국독서학회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