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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기 교수 신간 《듣는 인간_호모 아우디투스》 북콘서트

작성자 관리자 날짜 2026-06-12 09:39:40 조회수 6
▲박인기 교수 《듣는 인간》 출간 기념 책수다(북콘서트) ⓒ 오순덕

 

"소중한 소리를 들었으면, 다시 누군가에게 들려주자" 

"제가 잘 듣고 잘 실천해서 이 책을 쓴 게 아닙니다. 누가 '교수님은 듣는 인간을 얼마나 잘 실천하십니까?'라고 물으면, 저는 늘 제 자신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나 잘해라'." 

행사 막바지, 박인기 경인교육대학교 명예교수는 이렇게 자신을 낮췄다. 한 시간 반 동안 '잘 듣는 인간'을 이야기한 끝에, 정작 그 자신은 듣기의 미완성을 고백한 것이다. 객석에서 웃음과 함께 깊은 끄덕임이 번졌다. 

지난 531일 일요일 오후, 서울 성북구 아리랑로의 원더풀작은도서관에서 박인기 작가의 새 책 <듣는 인간>(20264월 출간) 북콘서트가 열렸다. 진행은 제자인 내가 맡았고, 공동 진행은 체스동화 <체스깐부와 함께 꾸는 꿈>을 쓴 김범준 관장이 함께했다. 우리는 이 자리를 딱딱한 강연이 아니라 '책수다'라 불렀다. 책 읽고 수다 떨기. 우리 사회가 오래 부정적으로 여겨 온 '수다'야말로, 자기 온몸으로 나누는 가장 솔직한 말살이가 아니던가. 그 수다 문화를 긍정으로 바꾸면 그것이 곧 생활의 민주화라는 믿음에서, 우리는 청중과 함께 수다를 떨기로 했다. 

김범준 관장이 먼저 자리가 마련된 사연을 풀었다. 박 교수께 책을 가장 먼저 받아 읽고는 혼자 갖기 아까워 페이스북에 소개 글을 올렸는데, 그 글을 본 필자가 곧장 전화를 걸었다는 것이다. 실제 그랬다. 필자는 "제자로서 스승님의 이 좋은 작품을 그냥 둘 수 없다, 무슨 일이라도 함께 해보자"라고 했다. 그렇게 이 자리가 만들어졌다. 박인기 교수는 필자의 두 번째 박사 학위인 국어교육학 스승님이셨다. 

먼저 책의 학명(學名) 같은 부제 '호모 아우디투스'의 내력을 물었다. 박 교수는 호모 사피엔스, 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 신이 되려는 인간 호모 데우스를 떠올렸다고 했다. 

"그냥 <듣는 인간>이라고만 제목을 다니까 좀 쓸쓸하더군요. 있어 보이는 이름을 하나 붙이고 싶었어요. 그런데 라틴어를 잘 모르니, 라틴어에 능한 절친 우한용 교수에게 물었지요. '아우디(audi)'가 바로 듣는다, 청각을 뜻한다고 정확히 짚어주더군요. 영어식으로 읽으면 오디오가 되는 겁니다." 

소박하다 못해 솔직한 작명이었지만, 나는 호이징아의 '호모 루덴스'를 처음 들었을 때처럼 무릎을 쳤다. 듣는 인간이야말로 놀이하는 인간 못지않게 사람의 본질을 가리키는 말이 아닌가. 

나는 한글 교육을 해 온 사람으로서 종종 묻는다. 아이가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은 무엇일까. 정답은 '엄마''맘마'도 아니다. 아이는 단어가 아니라 문장을 먼저 익힌다. 뱃속에서부터 엄마 아빠의 대화를, 그 소리의 흐름을 듣고 자라기 때문이다. 사람은 말하기 전에 먼저 듣는 존재다. 박 교수가 여기서 하나의 제안을 내놓았다. 

"태교를 엄마 혼자 하지 말고 온 가족이 합시다. 아빠도, 형도, 언니도 한마디씩 태명을 부르며 녹음하는 거예요. 그걸 아이가 일곱 살, 여덟 살 생일잔치마다 함께 듣고, 나중에 장가가고 시집갈 때 영상으로 들려주는 겁니다. '네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우리가 들려준 말이야' 하고요. 얼마나 따뜻한 문화입니까." 

그런데 왜 우리 사회의 듣기 문화는 빈약할까. 박 교수의 진단은 명쾌했다. 

"읽고 쓰는 건 문자를 익혀야 하니 공부가 필요하다고 여기고, 말하기도 사회적 활동이니 교육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듣기는 '귀 있으면 다 듣지' 하고 넘겨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깊이 보면 맞는 말도 아닙니다. 귀로 소리는 듣지만, 그 소리에 담긴 메시지를 내면화하고 깊이 해석하는 일에는 공부와 훈련이 필요하거든요." 

학교 교육이 인지적 효율성에만 매달린 사이, 듣기에 깃든 보이지 않는 가치들 즉 윤리적인 것, 그리고 영성(靈性)은 줄곧 놓쳐 왔다는 것이다.

"영성 발달은 종교 기관만의 일이 아니라, 앞으로 학교 교육이 감당해야 할 영역입니다. 우리가 영성을 가꾸지 못하니 '영혼 없는 인간'이 되어 버린 것 아닙니까. 건성으로 듣고, 좀비 같은 말만 주고받지요." 

듣기 교육을 기능(skill) 차원에서 교양(敎養) 차원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이 책의 핵심 주장이 여기 있다. 

박 교수가 말하는 '잘 듣기'는 기교의 능숙함이 아니다. 

"개인 차원에서 듣기는,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잠시 유보하는 일입니다. 좀 아는 게 있으면 상대보다 먼저 말하고 싶지요. 그게 일종의 지식 권력이에요. 그 권력을 다 휘두르지 않고 30%쯤 상대에게 넘기는 것, 그게 민주적 리더십입니다." 

그는 가슴 아픈 자기 고백도 보탰다. 아들을 키우며 분노를 다스리지 못해 야단친 일들을, 예순이 넘어 두 번이나 정식으로 사과했다는 것이다. 소설가 이병주가 화가 나면 아들에게 글로 써서 건넸다는 일화를 들며 "쓰기는, 그리고 듣기는, 다스리지 못하는 감정을 잠시 지연시켜 줍니다. 그 잠깐의 유보가 위대한 지혜예요"라고 했다. 

공동체 차원의 듣기는 결국 '남을 세워주는 일'이라 했다. 한 산골 마을회관의 한 장면이 압권이었다. 평생 농사만 지은 노인이 손주들이 보내준 중국 체험 여행을 자랑하려는데, 곁에 있던 한 이가 "그거 내가 5년 전에 가봤다"며 말을 가로채 버렸다. 

"그 노인이 속으로 뭐라 했겠어요. '내 다시는 저 친구와 상종을 않겠다.' 친구 하나를 잃은 겁니다. 특히 배운 사람, 교수·교사가 조심해야 해요." 

세종대왕을 연구해 온 제자로서, 나는 이 대목에서 훈민정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세종 역시 듣기에서 출발했다. 중국말과 우리말이 서로 다름을 '듣고', 그 다름에서 새 문자의 필요를 길어 올렸으니 말이다. 

세종어제 서문의 "제 뜻을 펴지 못하는 백성"에서 ''은 한자로 정(), 즉 단순한 지식·정보가 아니라 느낌과 감정, 맥락까지 품은 말이다. 한자를 모르는 백성이 자기 느낌과 생각을 마음껏 표현하고 또 들어서 서로 통하게 하려 한 글자, 그것이 훈민정음이다. 

그렇다면 잘 듣는다는 것도 결국, 상대가 어떤 맥락에서 무슨 마음으로 말하는지 그 느낌과 감정까지 함께 듣는 일이리라. 박 교수는 "개인 심리 차원의 듣기와 공동체·문화 차원의 듣기가 따로가 아니다"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담 중 가장 웃음이 터진 대목은 낭독 시연이었다. 박 교수는 1994·1995학년도 수학능력시험 언어영역 출제위원으로 들어가 우리나라 최초로 대입에 '듣기 평가'를 도입한 산증인이다. 목소리가 워낙 좋아 듣기 지문 낭독까지 맡았는데, 문제는 "틀린 답도 너무 잘 읽어 마치 정답처럼 들리게 한" 데 있었다고 한다. 이 일화는 묵직한 통찰로 이어졌다. 

"들려주기(딕션)가 반듯하다고 메시지까지 옳은 건 아닙니다. 우리는 상대의 발음과 억양이 아나운서처럼 반듯하면 그 내용까지 옳은 것처럼 듣는 경향이 있어요.“ 

이 책은 듣기의 대상을 사람의 음성 너머로 넓힌다. 자연의 소리, 사물의 소리, 그리고 내 안 깊은 곳의 영혼의 소리까지. 

"나무나 의자가 소리를 내는 건 아니지요. 그런데 '내가 의자의 소리를 들었다'고 말할 수 있어요. 소리 내지 않는 사물을 듣고, 그 들은 것을 언어로 옮긴 것. 저는 그게 바로 시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북콘서트가 부모들을 향해 내건 화두는 '우리 아이 독서 슬럼프 극복'이었다. 객석의 한 교사가 그 고민을 묻자, 박 교수의 답은 뜻밖에도 '느슨함'이었다. 

"텍스트를 한 줄 한 줄 꼼꼼히 따라 읽는 정독만이 최상은 아닙니다. 슬럼프일 때는 오히려 두서없이 많이 읽는 다독이 약이 돼요." 

그는 책 네 권을 읽고 독후감을 쓰게 하는 대신, '내가 다큐멘터리 PD라면 이 책들로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까'를 기획하게 했더니 효과가 컸다고 했다. 여러 경험과 텍스트가 아이 안에서 발효되고 융합되는 것. 그것이 진짜 독서라는 것이다. 가장 무릎을 친 대목은 '피암시(被暗示) 효과'였다. 

"아이를 면전에서 칭찬하는 건 효과가 적어요. 차라리 아이가 옆방에서 듣고 있겠거니 하고, 부부가 자기들끼리 아이를 칭찬하는 겁니다. 그렇게 흘려들은 칭찬의 효과가 엄청나요." 

부모가 가르치려 들기보다, 미술관에 함께 가서 자기 소감을 아이 곁에서 도란도란 나누는 일. '밥상머리 대화'야말로 최고의 교육이라 했다. 듣기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아이를 키우는 가장 지혜로운 길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대담은 책 끝에 실린 시 <굴참나무를 듣다>를 함께 읽으며 닫혔다. 올림픽공원 몽촌토성, 경사 70도의 비탈에 굴하지 않고 선 굴참나무 한 그루. 28년째 그 곁을 걸어온 작가가 어느 날 그 나무에게 말을 건다. 굴참나무가 말한다. 어찌하여 저를 이 비탈에, 외로움에, 비바람에 세우십니까. 하늘은 묵묵히 답한다. 너의 물음 안에 너의 답이 있노라. 그리하여 비탈이 뿌리를 굳세게 하고, 외로움이 의연함을, 비바람이 용기를, 어둠이 담대함을 키웠음을 나무는 알아차린다. 그리고 시의 마지막. "내가 나를 듣습니다." 

박 교수는 이 시의 사연을 들려주었다. 열다섯에 단돈 500원을 들고 상경해 공장 직공으로 시작, 끝내 큰 기업을 일구고 장학재단을 세운 한 후배의 생애가 꼭 그 굴참나무 같았다는 것이다. 곤경과 결핍이 오히려 사람을 더 사람답게 키운다는 깨달음. "소중한 소리를 들었으면, 나만 간직하지 말고 합당한 자리에서 다시 누군가에게 들려주자"라는 것이 그가 이 시를 통해 전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듣기와 말하기의 선순환. 나는 이날의 북콘서트가 바로 그 선순환의 한 장면이었다고 믿는다. 책 어딘가에 "소리가 풍경이 된다"리는 구절이 있다. 그날 객석을 가득 메운 분들은 시종 깊이 경청해 주었다. 그 듣는 풍경이, 언젠가 모두의 가슴에 아름다운 풍경으로 남기를 바란다. 

스승님께서는 끝내 "잘 실천해서 쓴 책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 겸손한 고백이야말로, 평생 잘 들어 온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를 '듣는 인간'의 자리로 따뜻하게 불러내고 있음을.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39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