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학(碩學) 이어령 선생이 한국어의 묘미를 말씀하시면서 기가 막힌 예를 들었던 게 생각난다. 말씀인즉, 한국 사람들이 먹는 것 중에는 음식 말고도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마음을 먹는다’라는 표현이 바로 그것인데, 이 표현을 곰곰 씹어 보면 그야말로 한국인의 마음이 보인다.
세상에 먹을 것이 얼마나 많은데, 그 많은 것 중에 ‘마음을’ 먹느냐는 것이다. 100만 명 이상이 사용하는 지구촌 240개 언어 중에 ‘마음을 먹는다’라는 표현을 한국어 말고는 보지 못했다고 했다. 아시다시피, ‘마음을 먹는다’는 결심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양자는 의미의 결이 좀 다르다.
마음을 먹어버렸다고 하면 어떤 결심을 더 확실하게 체화(體化)한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결심하는 주체의 의지가 우뚝 강화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마음을 먹는다’에는, 그렇게 말하는 순간 요지부동 변할 수 없는 그 무엇이 되어 버린 ‘결심의 내용’이 있다. 이미 먹어버렸으므로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한국인의 심리와 정서와 세계관이 담긴 이런 표현들은 언어인류학적으로도 그 의미가 도드라진다.
‘듣는다’에도 말의 묘미를 느껴 본다. 어떤 약을 써서 그 약의 효험이 나타나면, ‘약(藥)이 듣는다’라는 매력적 표현이 있지 않았던가. 약의 효험이 아주 뛰어나면, ‘약이 잘 듣는다’라고도 한다. 약(藥)이 듣다니, 약도 사람처럼 청각 기능이 있다는 말인가.
우리 한국인은 사람과 사물 사이의 상호작용을 인식하는 데에도, 듣거나 먹거나 만지거나 하는 등 감각의 통로에 많이 기대는 편이다. 약이 사람에게 효험을 나타내는, 약과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을 두고도 ‘약이 사람에게 듣는다’라는 방식으로, 마치 사람과 약 사이에 청각적 소통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약이 듣지 않는다’라는 표현도 쓴다.
이럴 때 ‘듣는다’에는 ‘서로 잘 호응한다’, ‘상대를 잘 품는다’ 등의 뜻까지 있다. 이쯤 되면 ‘듣는다’의 숨은 효능을 눈치챌 수 있겠다. 복잡한 인간사(人間事)에서 그 어떤 ‘긍정의 솔루션’을 깊숙이 품고 있는 말이 ‘듣는다’ 이다. 그걸 알겠다. /박인기 경인교대 명예교수·국제PEN한국본부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