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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기의 Homo Auditus] 소음

작성자 관리자 날짜 2024-08-22 09:35:34 조회수 149

 

소음(騷音, noise)의 사전적 풀이는 불규칙하게 뒤섞여 불쾌하고 시끄러운 소리이다. 청각적 인상으로만 소음을 말하면 듣기 싫은 소리이다. 그만큼 소음 판단은 주관적이다. 법이 말하는 소음은 단순하다. 소음에 대한 규제는 그 크기로만 제한하며, 소리의 종류를 가리지는 않는다. 일반적으로 주거지역에서는 낮 40dB, 35dB 정도이면 소음으로 인정된다. 그런데 소음은 물리적 현상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소음이 상징화되는 영역은 무한하다. 

세계적인 전기 작가 줄리언 반스(Julian Barnes, 1946~ )가 쓴 시대의 소음을 읽는다. 이 책은 억압과 공포의 시대를 영웅의 가면과 겁쟁이의 속마음을 감추며 살았던 소련의 작곡가 쇼스타코비치(1906~1975)의 전기다. 반스가 스탈린 시대의 폭압과 부조리를 소음으로 표상한 것이 인상 깊다. 이념과 정치 권력이 왜곡되어 개인의 자유와 예술의 혼이 설 자리가 없던 시대의 암울한 곤경을 소음으로 상징화한 것이다. 

그런 소음의 시대를 쇼스타코비치는 어떻게 헤쳐 나갔는가. 반스는 이 책에서 말한다. “쇼스타코비치는 부조리한 체제에 직설적으로 반항하기에는 소극적이고 소심한 인물이었으나, 그렇다고 눈 감고 투항하기에는 너무나 예민하고 섬세했다.” 그 체제에 대응하는 쇼스타코비치의 고단한 내면을 두고 겁쟁이가 되기도 쉽지 않았다. 겁쟁이가 되기보다는 영웅 되기가 훨씬 쉬웠다고 집어낸다. 실제 쇼스타코비치는 소련의 음악 영웅이었다. 안으로는 불편했을 것이다. 겁쟁이로 평생 낙인찍히는 걸 피하려고 영웅 역할을 하기가 얼마나 고단했을까. 나는 자유의 부재가 그런 소음의 시대를 불러오는 모습을 본다. 

소련 체제는 예술가들을 집단 수용하여 창작활동을 하게 했다. 가금류 집단농장 69번이 작곡가들의 임시 숙소가 되었다. 쇼스타코비치는 닭장 안쪽 벽에 널빤지 조각을 못질해 만든 책상에서 교향곡 8번을 썼다. 이런 상황 자체가 예술가에게는 견디기 힘든 소음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쇼스타코비치는 주변이 아무리 혼란스럽고 어수선해도 구애받지 않고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는 소음 중에도 몰입했다. 반스는 이것이 그에게는 구원이었다고 말한다. 

스탈린 시대의 정치적 소음을 온몸으로 감당하면서, 치열한 자기 내적 분열을 고통으로 겪어낸 바 있는 쇼스타코비치가 소음을 대하는 방식은, 그것에 쉽사리 휘말리지 않는 것이었다. 오늘 우리 앞에 밀려드는 온갖 시대적 소음들은 어떠한가. 어떤 지혜를 구해야 할까. /박인기 경인교대 명예교수·국제PEN한국본부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