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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기의 Homo Auditus] 평판(評判)

작성자 관리자 날짜 2024-05-21 10:18:56 조회수 161

 

대학교수 시절, 나는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을 했다. 캠퍼스는 도시 외곽에 있었다. 내가 탄 버스 안은 학생들의 대화로 그득했다. 교수의 강의 스타일, 리포트, 조별 발표, 시험, 축제 등이 주된 화제인데, 자연스럽게 교수들에 대한 평판으로 이어진다. 나는 본의 아니게 학생들의 교수 평판을 듣는다. 그들의 교수 평판은, 직설적이고 더러는 감정에 기울기도 한다. 

나는 학생들의 교수 평판을 이런 식으로 듣는 것이 동료들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좀 불편했다. 내 강의에 대한 평판을 버스에서 들은 적도 있다. 기분이 묘했다. 민의를 알겠다고 평복으로 갈아입고 저잣거리에 나간 임금님의 마음이 이럴까. 나는 이 버스 안 평판을 듣는 나의 태도를 두 가지로 정했다. 하나는 학생들 평판의 자연스러움에 대해서 인정하고 존중하기로 했다. 둘째는 학생들 평판만을 듣고 쉽게 동료 교수에 대한 편견을 가지지 않으려고 했다. 

평판(評判)이란 글자 뜻으로 보면 상당한 합리성 또는 객관성을 지닌다. ‘()’은 비평과 평가의 이성에 닿아 있어야 하고, ‘()’은 판단의 객관성 공정성을 담보해야 한다. 그런데도 정치적 의도와 확증 편향으로 만들어지는 평판은 또 얼마나 횡행하는가.

 

'소락원' 정원의 카네이션. /이지은 리포터

 

평판을 듣겠다는 의도를 드러내면 이미 온당한 평판을 듣기가 쉽지 않다. 그 평판의 향방이 권력을 정하는 국면이면 더욱 그러하다. 이른바 역선택이다 뭐다 하는 논쟁이 다 평판의 왜곡을 두고 생기는 것 아닌가. 여론조사조차도 그런 온당한 평판을 해내지 못하는 것을 본다. 

누군가에 대한 평판을 들을 때는 바른 심지가 서 있어야 한다. 귀 얇은 호사가 기질로 접근하여, 그걸 여기저기 퍼 나르기에 분주하다면, 상대에게 해를 끼치고 종국에는 나를 해치는 일이 된다. 특별히 누군가를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매우 적극적으로 평판하는 사람은, 누군가와 특별한 이해(利害)관계에 있을 수 있다. 이 점 또한 조용히 유의해야 할 것이다. 

세상 변화는 참으로 빨라서 평판 조회(reference check)를 전문적으로 해 주는 용역 회사들이 인기를 끈단다. 이직하고 새로 들어간 회사에서 전 회사에 이직한 인물의 평판이 어땠는가를 확인하는 것이다. 나에 대한 평판이 정보 자본으로 변하여 누군가에게 돈을 벌게 해 주는 세상이다. ‘평판의 진화라고 하기에는 왠지 으스스하다. /박인기 경인교대 명예교수·국제PEN한국본부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