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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기의 Homo Auditus] 자식 자랑

작성자 관리자 날짜 2024-03-18 10:14:18 조회수 122

 

원로 인문학자인 J 선생을 댁으로 찾아뵈었다. 거주하시는 댁은 좀 특별한 아파트인데, 그 격조가 대단하다. 입주자들은 대개 시니어들로서, 경제력도 있지만, 지내 온 경력과 각기 자기 분야에서 쌓은 공덕이 대단하다고 한다. J 선생은 입주자들이 세대별 취사를 하지 않아서 좋다고 하신다. 식사는 아파트 내의 공동 식당으로들 와서 잘 준비한 메뉴로 더불어 대화를 즐긴다. 선생께서는 편리해서 좋고, 노년에 외롭게 단절되지 않고, 입주자들끼리 인간적으로 친밀하게 지낼 수 있어서 좋으시단다. 

좋은 점을 열거하시다가, “집 자랑을 좀 많아했나하고는 말씀을 멈추신다. 그 말씀 끝에 J 선생은 그냥 지나가듯 한 가지 불편한 것이 있다고 하신다. 그것이 무엇이냐고 여쭈었다. “자식 자랑들을 너무 많이 해요. 앉으면 끝이 없어요.” 

들어 주기로 작정하고 듣기로 하면, 세상에 흔한 것이 자식 자랑이다. 부모 있는 곳에 자식 자랑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특별히 도를 닦은 부모가 아닌 한, ‘자식 자랑은 본능적이다. 그래서 그런지 자식 자랑은 여간해서는 품격 있게 할 수가 없다. 

내 자식의 우월함을 내세우다 보면, 은근히 남의 자식 무시하는 듯한 기색을 비치기 쉽다. 설령 그런 뜻이 없었다 할지라도, 그런 느낌 전혀 주지 않고 내 자식 자랑을 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그런데 세상에는 그냥 평범한 자식이 대부분이다. 아니, 그 축에 들기도 좀 무엇한 자식, 이를테면 부모가 어디 당당하게 내놓기가 어려운 자식들도 있다(사실은 알고 보면 그런 자식이 그냥 평범한 자식이다). 

 

/이지은 리포터

 

겉으로 괜찮아 보이는 집안이라도 속을 들여다보면, 집안마다 부모에게는 아픈 손가락에 해당하는 자식이 있다. 그래서 내가 내 자식 자랑하는 동안에, 내 이야기를 듣고 있는 그 누군가는 의문의 일패(一敗)’를 당하는 것이다. 

일단 자식 자랑이 시작되면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는다. 본의는 아니었지만, 내 자랑이 높을수록 자랑 없는 상대방이 놓이는 골짜기는 낮아져서, 어느새 자랑하는 이의 어조에 차별이 살며시 끼어든다. 그럴수록 듣는 쪽은 민감하여 말하는 이의 자랑을 자랑으로만 듣지 않는다. 말하는 쪽의 속됨과 천박함을 먼저 짚어낸다. 그러니 본전도 못 찾는 것이 자식 자랑 아니겠는가. 자식 자랑은 팔푼이나 한다는 속언(俗言)이 새삼 환기된다. 

그러면, 상대의 그 잘난 자식 자랑을 어떻게 들어야 한단 말인가. 정답은 없다. “나는 잘난 척하는 사람이 제일 싫어요.” 이런 말을 대놓고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대놓고는 못 해도, 마음속으로 잘난 척하는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은 세상에 참으로 많다. 굳이 고백하라면 나도 여기에 속한다. 

어떤 심리학 저널에서 이런 심리 분석 하나를 보았던 기억이 있다. 잘난 척하는 걸 못 봐주는 심리, 이 심리는 얼마나 정당한 것인가 하고 자세히 들여다보았더니, 그 또한 잘난 척하는 심리(mentality of pride)’의 또 다른 형태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상대방의 자식 자랑, 어떻게 들어주어야 하는가. ‘그냥 들어주지 뭐하다가도 , 다른 핑계를 대고 자리를 뜰까하다가도 그게 결국 잘난 척하는 거 못 봐주는 내 속아지 아닌가하는 자각에 도달한다. 상대방의 자식 자랑, 어떻게 들어야 하나? 고민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경인교대 명예교수·한국독서학회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