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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기의 Homo Auditus] 비밀(秘密)

작성자 관리자 날짜 2024-02-13 16:26:40 조회수 116

 

어떤 비밀이 내 귀로 들어왔다. 마음에 파문(波紋)이 일어난다. 이 비밀을 권력자에게 팔면 그 밑에서 한자리 얻을 수도 있겠고, 이 비밀로 횡재를 할 수도 있겠다. 남의 어두운 비밀은 나를 시험에 들게 한다. 그 비밀을 내가 알고 있음을 비밀로 하겠다면서 무언가를 노려볼까. 불순한 욕망이 생긴다. 비밀 앞에 우리의 인격은 부단히 도전받는다. 비밀을 어떻게 들어야 한단 말인가.  

정보화 사회의 어두운 그늘이라 해야 할까. 비밀이 자본재라도 된 듯한 세상이다. 남의 비행과 불륜은 비밀 시장의 호재들이다. 심지어는 가짜 비밀을 만들어 음모론에 가담하고, 조회 수를 올리려는 유튜버도 있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이다. 비밀을 다루는 동안, 그것이 나의 생에 가해 오는 운명의 징벌을 지금은 모른다. 그 예측을 신은 인간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고금동서의 변하지 않는 법칙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누군가의 비밀을 알고 있으면 그로 인해 내가 위태로워진다. 하물며 가짜 비밀을 만들어 전파하는 업보는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남의 비밀에 무심한 사람은 거의 없다. 그 반대이다. 비밀의 냄새를 맡으려는 본능적 후각이 발동하여, 비밀에 죽기 살기로 다가가려 한다. 타 죽을지도 모르고 등불에 달려드는 불나비의 모습이다.  

비밀 앞에 파멸하는 인간의 행동 패턴은 신화가 이미 상징으로 세워 놓았다. 청순한 여인 프시케를 알게 된 에로스는 어머니 아프로디테의 무서운 금기도 잊고, 밤마다 가면을 쓰고 와서 프시케와 지내다 새벽에 사라진다. 에로스는 말한다. “프시케 내가 누구인지 알려고 말아요. 그 비밀을 알게 되면 당신은 위태로워져요.” 그러나 프시케는 이 비밀을 지키지 못하고 에로스의 가면을 벗겨 버린다. 그녀는 결국 지옥 하데스로 간다. 그렇구나. 비밀을 알려 하면 다치게 된다.

 

묵호 도째비골 스카이밸리에서~. /이지은 리포터

 

세상 모든 이야기 중에 '비밀 모티프'를 모두 제거한다면, 이야기로 존립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있을까. 그렇게 보면, 세상사(世上事) 곧 비밀사(秘密事)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비밀을 오래 지키기는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SNS의 촘촘한 그물이 속절없이 비밀을 체크해 내고, 몰래 쌓아 두었던 음험한 비밀도 휴대전화를 털면 다 드러나는 세상이다.  

그러면, 이렇게 세상사에 나도는 비밀, 인간이 집착하는 비밀의 본질 속성은 무어라 해야 할까? 한마디로 단언키는 어렵겠지만, 나는 <빨강 머리 앤>의 작가로 알려진 캐나다 작가 루시 몽고메리(Lucy Moad Montgomery, 1874-1942)의 통찰이 마음에 든다. 그녀는 비밀을 이렇게 투시한다. “비밀이란 대부분 추한 것이다. 아름다운 것은 숨지 않는다. 오직 추하고 뒤틀린 것이 숨는다.”  

추하고 왜곡된 것이 비밀이라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 비밀이 끼치는 심리적 해악을 더 추가하려 한다. 설령 추하지 않은 비밀이라 하더라도, 비밀은 우리를 평온한 감정에서 몰아낸다. 비밀은 인간 욕망의 회로를 다면적으로 지배한다.

비밀은 침묵으로 응대함이 적절하다. 인생행로에서 비밀과는 만나지 않는 길을 걸으면 좋으련만, 사람들은 오히려 비밀을 찾아서 엿들으려 한다. ‘엿듣다!’ 이 말은 인간의 비뚤어진 비밀 욕구를 반영하는 말이다.  

비밀을 엿듣는 것은 그 행위 안에 이미 어떤 흉한 조짐이 들어 있다. 엿듣는 순간 불운을 예약하는 느낌이 든다. 비밀은 애당초 아니 들으려 함이 온당하다. 불가피하게 들었다면 침묵으로 막아냄이 옳다. 인내와 회개의 영성이 없이는 다가갈 수 없는 인품의 경지이다. 

작가 에드가 하우어(Edgar W. Howe, 1853-1937)의 지혜가 돋보인다. “비밀을 지킬 줄 아는 이는 현명하지만, 지킬 비밀을 가지지 않은 자에 비하면 덜 현명하다.” /경인교대 명예교수·한국독서학회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