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 나폴레옹이 있다면 우리에겐 이순신 장군이 있다. 6일 개봉한 ‘나폴레옹’에 맞서 ‘노량-죽음의 바다’가 20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김한민 감독이 뚝심 있게 10년 프로젝트로 진행해 온 이순신 3부작 ‘명량’ ‘한산-용의 출현’에 이어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이다. 그동안 해전의 명장으로 부활했던 이순신 장군은 ‘노량-죽음의 바다’로 다시 역사 속으로 들어간다. 그의 마지막이 거대한 해전과 함께 펼쳐진다.
누구나 알고 있는, 누구나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영화가 ‘노량-죽음의 바다’(이하 ‘노량’)다. 심지어 제목조차 스포일러다. ‘명량’(2014)에서 대장선을 타고 호령하던, ‘한산-용의 출현’(2022)에서 지략을 뽐내던, 그 이순신(1545-1598) 장군이 마침내 ‘노량’에서 최후를 맞는다. 그 몸을 입은 배우는 최민식-박해일에 이어 김윤석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것은 1592년, 명량대첩은 1597년 9월, 한산도대첩은 1592년 7월, 노량해전은 1598년 12월이다. 순서상으로는 한산-명량-노량이다.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다.” 장군은 명량해전에서 12척의 배로 133척의 적을 물리쳤다. 정유재란 첫 번째 해전을 승리로 장식하면서 조선은 일본으로부터 제해권을 되찾는다. “지금 우리에겐 압도적인 승리가 필요하다.” 시간을 되돌려 젊은 시절 장군은 한산대첩을 승리로 이끄는 지략가의 면모를 보인다. 그리고 “이 원수를 갚을 수만 있다면 이 한 몸 죽는다 해도 여한이 없을 것이다.” 조선 땅에서 왜군을 완전히 몰아낸 노량해전에서 장렬한 최후를 맞는다.
임진왜란 발발 후 7년, 1598년 12월. 왜군 수장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갑자기 사망하자 왜군들은 조선에서 황급히 퇴각하려 한다. 이순신은 이들의 퇴각이 일시적이며 언젠가는 다시 조선을 유린할 것이라는 걸 안다. 다시는 조선을 넘보지 못하도록 왜군을 완벽하게 섬멸해 완전한 항복을 받아내는 것이 이 전쟁을 올바르게 끝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순신은 명나라와 조명연합함대를 꾸려 왜군을 포위한다.
순천왜성에 진을 치고 있던 히데요시의 가신 고니시 유키나가(소서행장)는 사천왜성 시마즈에게 SOS를 친다. 시마즈는 사천성전투에서 조명연합군을 물리치고 칠천량해전에서 원균이 이끄는 조선함대를 물리친 왜군의 최종 보스. “이순신.” 짧게 신음처럼 내뱉은 시마즈는 순천예교성으로 전군 출발 명령을 내린다.
“오늘 밤 남해 노량에서 적들을 맞이할 것이다.” 참모들을 불러 전략을 짠 이순신은 ‘오늘 진실로 죽기를 결심했사오니 원컨대 하늘은 반드시 이 적들을 섬멸할 수 있게 해주소서’(今日固決死 願天必殲此賊)라고 기원한다.
명나라 군대는 입장이 좀 다르다. 굳이 도망가는 왜군의 목덜미를 잡아 멸할 필요가 있는가. 진린은 이순신에게 항의한다. 돌아온 이순신의 답은 “싸우기 싫으면 연합을 파한다.” 진린은 왜군에게 퇴로도 열어주고 고니시-시마즈 간 서신 왕래도 가능케 한다.
시마즈 함대 500척이 도착한다. 조선은 판옥선 등 120척과 명 함대 300척. 싸워볼 만한 전력이다. 조-명-일의 3국 전투가 된다. 밤부터 해가 뜨는 이튿날 오전까지 벌어지는 이 전투는 동아시아 최대 해전으로 기록되고 있다.
영화에서 이 치열한 전투는 1시간 40분 이어진다. 함선들의 포격과 충돌뿐 아니라 선상에서 벌어진 격렬한 백병전도 재현된다. 해전을 위해 드라마를 빌드업해 간다고 과언이 아니다. ‘명량’ ‘한산’이 여름 바다 위에서 펼쳐지는 전투였다면 ‘노량’은 이순신의 3대 전투 중 유일한 겨울 해전이다.
이순신은 노량해협을 노려 조선 함대를 매복시킨다. 그 와중에 등자룡 판옥선이 불에 타 등자룡이 전사한다. 진린 함대가 포위되자 이순신 대장선이 구한다. 왜군들이 퇴로인 줄 알고 간 곳은 조선 함대가 매복해 있는 관음포, 왜군은 전세가 불리해지자 조선 장수들을 노린다. 그들 전법에서는 우두머리가 죽으면 전쟁은 끝나는 거다. 결국 이순신은 왜군이 쏜 총의 유탄에 맞는다.
황급하게 쫓아와 곁을 살피는 아들과 조카에게 장군은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諱言我死), “내 몸을 방패로 가리고 울음소리를 내지 말라”(以牌防身體 使之不發哭)고 명한다. 자신의 죽음이 알려지면 아군의 전열은 무너지고 적은 사기가 충천할 것이다. 결국 시마즈는 도망갔고 500척 가운데 50척만 남는다. 임진왜란도 끝난다. 죽은 이순신이 산 왜군을 이긴 것이다.
이순신 역의 김윤석은 일단 똑똑한 캐스팅. 최민식의 울뚝불 용맹심에 박해일의 차분 명석함을 믹스 앤 매치한 듯한 배우가 김윤석이다. 그와 대척점에 있는 왜장 시마즈 역의 백윤식은 존재감 작렬이다. 두 배우는 ‘타짜’에 함께 출연한 바 있어 ‘아귀와 평경장의 대결’이라는 개그가 돌기도 했다.
왜군 쪽에는 고니시(이무생), 고니시의 오른팔이자 책사 아리마(이규형), 장수 모리아츠(박명훈) 등이 팀을 이룬다. 명군 쪽은 진린(정재영), 등자룡(허준호) 등이 무게를 잡는다. 특히 허준호는 나이테처럼 생긴 주름과 아우라만으로도 이미 드라마다. <삼국지>에 나오는 조자룡이 이렇겠지 싶다.
영화의 주역이라 할 해전 장면은 세트장에서 촬영했다. 강릉 스피드스케이트 경기장에 설치한 3000평(9917㎡) 규모 대형 세트장에서 실제 비율의 판옥선 등으로 촬영하고, 시각특수효과(VFX) 기술로 당시 해전을 재현했다. ‘명량’ ‘한산’ 모두 고증 오류 지적에 시달렸는데, ‘노량’에서는 얼마나 극복했는지 볼 일이다.
‘노량’은 총제작비 349억 원을 들인 대작. 손익분기점 720만 명이다. ‘명량’은 1761만, ‘한산’은 726만 관객을 동원했다. ‘노량’이 손익분기점만 넘긴다면 김한민은 ‘3000만 이순신’ 감독이 된다. 노량해전이 일어난 것이 12월 16일, 개봉일은 그 4일 후다. /유청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