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은 극장가 비수기로 알려진다. 12월·1월 대목을 노리는 블록버스터들이 발톱을 감추고 있고 그 틈새를 작은 영화들이 비집는다. 하지만 그것도 고정관념, 이젠 버릴 때가 됐다. 지난해 유해진 주연 ‘올빼미’가 11월 개봉해 300만 관객을 넘겼다. 작품만 좋으면 때를 문제삼을 때가 지나고 있다. 그 와중에 ‘서울의 봄’이 개봉 리스트에 올랐다. 현대사의 한순간을 소재로 중량급 배우들이 출연하고 있어 ‘제2의 올빼미’가 될 가능성이 높다.
‘서울의 봄’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으로 인해 촉발된 12·12 사태를 소재로 하고 있다. 12·12 사태는, 지금 세대에게는 ‘역사’이겠지만 부모 세대인 7080세대에게는 잊지 못할 ‘현장’이다. 특히 서울 한복판에 살던 사람들은 그날의 총소리를 아마 아직도 기억할 것이다. 바로 그날이 김성수 감독에 의해 한국영화 사상 처음 스크린에 옮겨진다.
10·26 사건은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가 박선호·박흥주 등과 함께 궁정동 안가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을 시해한 사건이다. 대통령 사망 후 1979년 12월 6일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영화에서는 정동환)이 대통령으로 정식 취임했다. 그로부터 6일 후 일이 벌어진다.
지금까지 정리된 12·12사태는 10·26 사건 합동수사본부장을 맡고 있던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육군참모총장이자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간 사건 수사와 군 인사 문제를 놓고 갈등으로 촉발됐다고 되어 있다. 이 사건의 핵심인물이었던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2021년 한 달 차로 각각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아직 당시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인물들이 있다.
그래서인지 감독은 12·12를 소재로 했다면서도, 9시간의 서울 혈투에 집중했다고 강조한다. 등장 캐릭터나 대사, 사건 진행 등도 극화했다는 설명이다.
‘서울의 봄’은 시간 순서상 ‘남산의 부장들’(우민호 감독)과 이어져 있다. ‘남산의 부장들’에는 10·26이 왜 일어나게 됐는지 묘사돼 있다. ‘서울의 봄’은 대통령 시해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당시 보안사 사령관이던 전두광(황정민)이 합동수사본부장을 겸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면서 육군참모총장 라인과 충돌이 일어난다. 전두광은 창밖을 한참 내다보며 고민에 빠진다. 그리고 "성공하면 혁명이야." 결단을 내린다.
복도를 걸어가는 그의 시야에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이태신(정우성)이 들어온다. 육군참모총장 정상호(이성민) 직속인 수도경비사령관이다. 전두광은 속을 떠본다. "아이고 이 장군님, 이런 어려운 시국에 서로 같은 편 하면…." 이태신이 말을 자른다. "대한민국 육군은 모두 같은 편입니다." 전두광이 답한다. "와…그렇습니까." 탐색 끝, 두 사람은 같은 편이 될 수 없다.
전두광은 먼저 육군참모총장 관저를 친다. 이어 전력을 서울에 총집결시킬 계획을 세운다. 작전명은 ‘생일집 잔치’다. 적대점에 있는 이태신은 "오늘 밤 승부수는 누가 먼저 서울에 병력을 진입시키는가에 있다"고 결의를 다진다. 치려는 창 전두광 세력과 막으려는 방패 이태신 세력은 한남동과 경복궁 일대에서 치열한 교전을 벌인다.
영화는 양쪽을 번갈아 가며 긴박한 결정의 순간들을 따라간다. 그리고 최종지점, 두 세력이 맞붙는 9시간 교전에 집중한다. 감독은 관객을 당시 현장 속으로 데려가고자 공방과 대치를 더 강렬하게 그렸다고 말하고 있다.
정치적 혹은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가 된 사건들을 영화로 만들면 늘 논란이 뒤따른다. 아무리 극화했다고 해도 사건 하나 대사 한마디에 감독의 ‘선택’이 실리기 때문이다. 그런 논란에 대비한 것인지 감독은 등장인물들에게도 영화적 이름을 부여했다. 전두광·노태건 등. 다만 이태신은 당시 있을 법한 캐릭터로 창조된 인물이다. 이는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의 학습효과 때문일 것도 같다. 당시 실명을 써서 1억 손배소에 걸렸다. 하지만 이 정도 변형이 무슨 소용 있을까는 싶다. 누가 봐도 누군지 안다.
제목이기도 한 ‘서울의 봄’은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 민주화 운동 ‘프라하의 봄’에 비유한 것이다. 서울의 봄은 통상 1979년 10·26 사건으로 유신체제가 붕괴한 후 1980년 5·18이 일어나기 직전을 일컫는다.
‘서울의 봄’은 개봉 후 어떤 반응이 일어날지 궁금하다는 점에서 11월의 화제작이다. 개봉일은 11월 22일, 전두환 전 대통령 사망일(2021.11.23) 하루 전이다. /유청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