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풍지는 그 우는 소리를 들음으로써 문풍지의 문풍지다움이 드러난다. 1937년, 남인수가 불러 널리 애창된 대중가요 ‘애수의 소야곡’ 제3절에 ‘문풍지(門風紙)’가 등장한다. 나는 이 대목 ‘문풍지’에서 우리 토속 서정을 한껏 음미한다.
무엇이 사랑이고 청춘이던고
모두가 흘러가면 덧없건마는
구슬픈 이 내 가슴 달랠 길 없고
바람도 문풍지에 싸늘하구나
이 겨울밤, 흘러가 버린 사랑, 안타까운 회한을 어이할까나. ‘바람도 싸늘한 문풍지’가 사랑을 잃은 화자의 시린 마음으로 들어와 운다. 그래서 애수의 하소연은 더욱 서럽게 곡조를 끌어 올린다.
문풍지는 ‘겨울철 한옥의 문과 문짝, 그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해 문짝 주변을 돌아가며 덧대어 풀로 바른 한지 종이’다. 바람이 세게 불면 문풍지는 바람에 떨려서 소리를 낸다. 그걸 문풍지가 운다고 했다. 문풍지 소리는 우리 전통문화의 상징성 강한 기호(記號, sign)가 되어 버렸다.
문풍지 소리는 어찌 들으면 바람 속 차가운 벌판 속에서 누군가 울부짖는 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실제로 들어보면 어딘가를 울면서 내달리는 것 같다. 봄날 새는 울기도 하고 노래하기도 하지만, 겨울 문풍지는 오로지 울 뿐이다. 닥나무의 정령이 겨울 영토로 추방되어, 문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울고 있다.
문풍지 소리의 추억을 따라가노라면, 내 자라던 시절의 토속적 겨울이 그리운 청각 이미지로 살아온다. 겨울 산촌의 외로운 집, 문밖 말을 달리는 바람으로부터 계절의 기별을 울면서 전하던 문풍지! 그 마을은 부항댐 호수 아래 잠긴 지 오래고, 그때 그 겨울 문풍지 소리는 호수 심연 그 깊은 곳 어디쯤서 무슨 부활의 꿈을 지피고 있을까.
문풍지는 한지 창호지로 된 문(門)을 기능적으로 완성하는 마침표 기능을 한다. 문풍지 없는 고택 창호지 문의 뻘쭘함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문풍지 없어서 황소바람 들어오는, 기능적으로 무용한 문짝을 생각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어느덧 세상은 달라져 이젠 알루미늄 샷시(sash) 문틀이 진화하면서, 문풍지의 모습도 ‘전통의 가치’로 승천해야 할 형편이다.
문풍지는 한지의 미덕과 풍습을 오롯이 담고 있다. 문풍지 소리를 향수로 그리워하는 오늘의 한국인들은 또 하나 듣고 싶은 게 있다. 그것은 전통 한지가 마침내 유네스코 인류 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다는 소식을 듣는 일이다. 머지않아 기쁜 소식이 들리기를 믿고, 기대한다. /경인교대 명예교수·한국독서학회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