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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기의 Homo Auditus] 객석

작성자 관리자 날짜 2023-10-26 10:44:14 조회수 156

 

그리스 아테네에서 코린트 남쪽 60km 지점에 있는 에피다우로스 원형 극장은 내가 경험했던 객석 중 매우 인상적이었다. 기원전 4세기에 지은 이 극장은 거대한 좌우 대칭의 아름다움이 돋보였다. 원래는 33계단의 원형 객석 열을 로마 시대에 55계단으로 확장하여, 엄청나게 넓고 높고 큰 규모였다.

무엇보다도 에피다우로스 원형 극장은 중앙 하단의 무대에서 내는 소리를 극장의 전 객석 공간에 전달하는 효능이 신비로웠다. 객석의 규모가 엄청나서, 얼핏 보아도 성능 좋은 마이크와 스피커를 사용해야 할 것 같았음에도, 그렇지 않았다. 자연 그대로의 소리나 육성을 객석 끝까지 전달하는 효과가 신비로웠다. 

여행을 안내하는 사람이 실험도 해 볼 겸 노래를 불러보라고 한다. 나는 이수인 선생이 지은 우리 가곡 내 맘의 강물을 조용히 불러보았다. 극장 객석 뒤쪽 좌우 끝머리 앉아 있던 외국인 관광객들이 작은 박수로 호응을 해 주었다. 잘 들린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문득 여기서 콘서트가 열리면, 이 객석들은 어디가 로열석이 되고, 어디쯤이 S석이 되고, 또 어디쯤이 A석이나 B석이 될까 짚어 보았다. 무대 위의 공연 장면은 보지 않고, 순전히 듣기에만 몰입하기로 한다면, 어디든 큰 차이는 없다고 가이드는 말한다. 

현대의 콘서트장은 연주의 질적 정교함을 객석에 전달하기 위해 고도의 기술 설비로 무장되어 있다. 객석의 청각 조건도 더욱 섬세하게 진화하고 있다. 

 

로마 오렌지 극장. /pixabay

 

세계의 유명 오페라단이나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이 있으면, 객석은 그 등급에 따라 현저한 가격 가치로 사람들의 기를 살리기도 하고 기를 죽이기도 한다. 어쨌든 음악 예술의 수준 높은 향유를 통하여 문화적 자아를 고양하려는 사람들에게 고급의 객석은 언제나 꿈의 자리이다. 

객석의 가치를 이런 고정관념으로만 받아들이다가 나는 얼마 전 살짝 충격을 받았다. 모차르트의 플룻과 하프를 위한 협주곡 2악장(Concerto for Flute and Harp K299-2nd Movement)’ 연주를 들려주는 어떤 유튜브에 다음과 같은 댓글이 달린 걸 보았다. 

저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청소 일을 하는데 제 직업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 제가 요즘 얼마나 음악을 사랑하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세종문화회관에서 모차르트 뮤지컬을 요즘 하는데, 저는 직접 뮤지컬을 보지는 못해도, 일하다 음악이 흘러나오면 가슴이 뭉클하답니다. 눈물도 나와요. 모차르트가 내 마음속에 그려지는 거예요. 가슴 아파요. 더 알고 싶어서 모차르트의 생애도 찾아보고 그의 음악도 찾아 듣습니다.” 

좋은 객석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물론 콘서트장 안에 있다. 거기에 S석도 있고, A석도 있다. 좋은 감상을 위해 누구나 좋은 자리를 원한다. 자리를 위해 돈을 아끼지 않는다. 그런데 좋은 객석은 그곳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보았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 안에 있는 객석이 내 눈에 들어온 것이다. /경인교대 명예교수·한국독서학회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