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귀 울음소리를 들어본 적 있는가. 필자는 없다. 그래서 유튜브를 찾아 당나귀 울음소리를 들어봤다. 처음 듣는 소리. 말이나 닭, 개, 호랑이, 사자 등의 울음소리와는 달리 형언하기 어려웠다. 듣기에 따라 다르지만, 큰 소리로 흐느끼는 듯한 에~오~ 뭐 이런 단말마였다. 그래서 그 당나귀의 이름은 이오가 됐다. 3일 개봉한 영화 ‘당나귀 EO’의 그 당나귀다. 말 못하는 당나귀 주연 영화라 이오 대신 그 마음을 자세히 전해 본다.
#이오는 동물복지를 원하지 않아
요란한 조명, 폴란드의 어느 서커스단, 이오는 무대 위에서 쓰러진 연기 중이다. 파트너인 카산드라(샌드라 지말스카)가 이오를 부르자 벌떡 일어난다. 연기가 되는 이오, 재주꾼 이오다. 카산드라는 이오를 얼싸안고 수고했다고 토닥인다. 이오라는 이름도 울음소리를 들은 카산드라가 지어준 것이다. 어느날 동물단체가 동물 학대를 이유로 서커스를 하지 못하게 막았다. 이오는 카산드라 곁을 떠나 ‘동물 복지’가 있는 곳으로 옮겨가야만 한다. 카산드라가 운다. 화면에 클로즈업된 이오의 큰 눈이 슬프다. 동물단체 사람들은 둘의 이별에 대해서는 관심없다. 그저 자신들의 행동을 인간적이라며 뿌듯해 할 뿐이다.
#마음껏 뛰는 말들이 부러워
마굿간으로 옮긴 이오는 말들을 위해 물건 나르는 수레를 끈다. 가끔 부러운 듯 달리는 말을 쳐다본다. 그러다가 실수로 트로피 선반을 넘어뜨리자 가차없이 쫓겨난다. 쓸모없는 당나귀 같으니라구. 옮겨진 곳은 농장, 이오는 식사도 거르고 어떤 의욕도 없다. 어디에도 쓸모없는 당나귀로군. 이오는 다시 벌목 현장으로 이송된다. 그러다가 카산드라를 극적으로 다시 만난다. 카산드라는 당근 머핀을 주며 "너의 꿈이 이뤄지길 바라. 행복해야 돼"라고 말한다. 이오의 꿈? 그건 카산드라와 지내는 건데, 그게 행복인데…. 하지만 카산드라는 오토바이를 타고 사라진다. 에~오~~~이오는 농장 울타리를 부수고 탈출해 카산드라를 찾아 나서지만 그만 길을 잃는다.
#그저 한번 울었을 뿐인데
이오는 경기가 진행 중인 축구장에 멋모르고 들어간다. 놀라 울었더니 그 소리에 놀란 선수가 페널티 킥을 실축한다. 이오는 영문도 모른 채 진 팀에게는 증오, 이긴 팀에게는 환희의 대상이 된다. 이긴 팀은 파티장에 이오를 데리고 가서 당근 등을 준다. 하지만 진 팀이 흉기를 들고 습격하는 바람에 크게 다친 이오. 의사마저 안락사를 권할 정도다. 이오는 고통 속에서도 카산드라가 자신을 어루만져주는 장면을 떠올린다. 가까스로 살아난 이오는 떠돌다 모피공장에 발길이 멎는다. 철창에 갇혀 공포에 떠는 여우를 보고 도살자를 앞발로 차버린다. 예기치 못한 살인.
#스스로 도축장으로
다시 떠돌던 이오는 마테오의 트럭에 실린다. 마테오는 이오를 살라미감이라고 떠든다. 휴게소에서 마테오는 여성 노숙자에게 집적거리다가 남성 노숙자의 칼에 살해된다. 경찰이 수사하는 도중 기둥에 묶여 있던 이오를 신부 바토가 자기 집으로 데려간다. 비토의 집도 이오의 안식처는 아니었다. 비토와 계모인 백작부인과의 이상한 시간 사이, 이오는 초능력적 힘으로 문을 열고 뛰쳐 나간다. 이오는 댐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를 바라본다. 그리고는 도축장에 도착해 뚜벅뚜벅 자기 발로 들어간다. 직원 눈에는 소와 당나귀 구별이 무의미하다. 철문이 철커덕 잠긴다. 도축당하는 길로 걸어가는 소들…이오는 앞장서서 걸어간다. 이오가 점점 어두운 공간으로 들어가고 레퀴엠이 흐른다. 화면이 암전된 뒤 픽! 도축용 캡티브 볼트 권총 소리가 들린다.
#박찬욱이 울었다
85세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 감독의 연륜이 묻어나는 영화. 로베르 브레송 감독의 영화 ‘당나귀 발타자르’(1966)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브레송 영화에서도 당나귀는 죽는다. 하지만 인간을 떠나 동물 사이에서 죽는다. 동물로서의 자존감. 이오는 스스로 인간에게 죽는 것을 택한다. 도살자 죽인 벌을 받듯 자기 발로 도축장에 걸어들어간다. 이오는 너무 지쳤고 어떤 희망도 없다. 도축장에 들어설 때부터 이오 1인칭 시점은 3인칭 시점으로 바뀐다. 부감으로 내려찍은 이오와 소들의 모습 그리고 마지막 암전의 총소리…. 박찬욱 감독이 이 영화를 보고 울었다고 한다. /유청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