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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청의 영화 속으로] 풍성한 한가위 스크린...어떤 영화부터 맛볼까

작성자 관리자 날짜 2023-09-21 16:40:12 조회수 236

곧 한가위다. 명절 가운데 으뜸, 먹을 것도 많고 쉬는 날도 길다. 이제는 OTT 등으로 예전 같지 않지만 그래도 추석은 여전히 극장가의 대목이다. 대대로 한국영화가 전권을 갖는다. 올해도 3편이 27일 동시 개봉을 앞두고 있다. 화제성은 각각 풍부하지만 갈수록 까다로워지는 관객들 입맛에 맞을지. 뭘 볼까 턱 고이며 재는 관객들과는 반대로 영화들은 무릎걸음으로 관객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강제규 감독의 영화 ‘1947 보스톤’. /롯데엔터테인먼트

 

마라톤 완주에 동참하려면 ‘1947 보스톤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 출전한 손기정 선수 사진을 보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2시간2919초 세계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거머쥔 손기정은 일본인 손 키테이라는 이름으로 시상대에 올라야 했다. 승리의 월계관을 쓰고도 고개 숙인 손기정, 그는 우승 기념 화분으로 가슴에 있는 일장기를 가린다.

강제규 감독의 영화 ‘1947 보스톤은 그로부터 11년 후다. 시대적 배경은 해방 정국 혼란스러운 시기. 해방이 됐어도 그의 금메달 기록은 여전히 일본 것이었다.

영화는 손기정(하정우)이 월계관을 쓰고 시상대에 선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후 10여 년간 방황하던 손기정이 베를린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인 남승룡의 소개로 재능있는 후배 서윤복(임시완)을 만난다. 그는 보스턴 마라톤대회에 출전할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달라는 제안을 받아들인다.

우여곡절 훈련을 마친 손기정·서윤복·남승룡 등은 미국 군용기를 타고 괌, 하와이,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보스톤에 도착한다. 하지만 당시 대한민국은 난민국으로 분류돼 대표팀 입국에는 거액의 보증금이 필요하고, 현지 보증인까지 세워야 한다. 고된 훈련과정과 눈 휘둥그레 겪는 신문물로 인한 좌충우돌이 웃음으로 버무려져 있다.

영화는 서윤복의 마라톤을 향해 2시간여 마라톤을 한다. 후반 마라톤 장면은 15분 정도 분량. 태극마크를 단 서윤복이 42.195를 뛰고 금메달을 받고 관객이 박수를 치고 감동을 받아야 비로소 완주를 끝낸다. 그 완주에 얼마나 많은 관객들이 동참할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

쉬리’(1999) ‘태극기 휘날리며’(2004) 국뽕 영화의 1인자로 꼽히는 강제규 감독이지만 ‘1947 보스톤은 비장미를 줄이고 담백하게 접근했다는 자평이다. 손익분기점은 450만 명.

 

강동원 주연 코미디 영화 ‘천박사 퇴마연구소-설경의 비밀’. /CJ ENM

 

강동원 판타지 게임에 합류하려면 천박사 퇴마연구소-설경의 비밀

강동원 주연 코미디 3편은 다 흥행에 성공했다. ‘그녀를 믿지 마세요’(2004·120), ‘전우치’(2009·606), ‘검사외전’(2016·970) 등 기록이 좋다. 이번 영화도 그래서 기대를 갖게 한다.

천박사(강동원)는 대대로 마을을 지켜 온 당주집 장손이다. 그 덕에 사람 마음을 꿰뚫어본다는 둥 허세로 가짜 퇴마사 노릇을 하며 돈을 번다. 남들은 건당 천만 원을 받는다 해서 천박사, 스스로는 천기를 읽는다 해서 천박사다. 그의 파트너는 인배(이동휘), 때 맞춰 북도 치고 음향도 깔고 폭발도 해 사기 효과를 돋운다. 어느날 귀신을 본다는 의뢰인 유경(이솜)이 찾아온다. 가짜는 진짜를 만나면 얼른 물러서는 게 상책. 그런데 수임료가 무려 1. 거절하기 힘든 액수다. 천박사 일당은 유경의 집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쫓으며 자신과 얽혀 있는 부적인 설경의 비밀을 알게 된다. 이어지는 후반부는 범천과의 한판 대결에 컴퓨터그래픽이 가세한다.

강동원은 검은 사제들’(2015)의 악령 쫓기에 검사외전의 뻔뻔함과 전우치의 가벼움을 더해 천박사 캐릭터를 연기한다. 일배 역의 이동휘와 쿵짝이 좋다. 빙의로 염력을 사냥하는 악귀 범천 역의 허준호는 눈빛과 주름만으로도 드라마틱하다. 아버지 배우 허장강보다 더 영화적이다. 여기에 영화 기생충지하커플 이정은과 박정훈이 특별출연해 초반 감칠 맛을 더한다.

원작은 김홍태·후렛샤의 웹툰 빙의’. ‘기생충’ ‘헤어질 결심등 여러 영화에서 조감독을 한 김성식 감독의 데뷔작이다. ‘설경의 비밀이 흥행하면 후속작인 마야고, 데모니악도 영화화될 수 있다. 손익분기점 240만 명.

 

김지운 감독의 ‘거미집’. /㈜바른손이앤에이

 

70년대 영화현장이 궁금하면 거미집

김지운 감독의 거미집은 감독이 주인공이고 영화 촬영현장이 주무대다. 시대 배경은 70년대, 한국영화 암흑기다. 한국영화 대신 방화’(일본 중심으로 변방의 영화라는 뜻)로 불리고 배우들은 여전히 딴따라로 불리던 시절이다. 시나리오 사전검열이 있었고 개봉 전 검열도 있었다.

그 시대에 한 감독이 열정에 사로잡힌다. 김열(송강호)이다. 싸구려 치정극만 내놓는다는 악평과 조롱을 받는 그의 새 영화는 거미집’. 시어머니 구박을 받다 쫓겨나는 며느리 이야기다. 촬영이 다 끝났는데도 그는 계속 영화 꿈을 꾼다. 마지막 부분만 재촬영하면 딱 걸작이 될 것 같은데. 딱 이틀이면 되는데. 하지만 제작자가 제작비 때문에 반대하고 배우는 스케줄 때문에 난색을 표한다.

게다가 검열받지 않은 대본으로는 촬영이 불가능하다. 김열은 모든 것이 불타는 엔딩 장면을 플랑세캉스’(plan sequence, 롱테이크)로 찍겠다는 집념을 버리지 않는다. 롱테이크는 한 신(scene)을 한 컷(cut)에 가는 촬영기법으로 카메라·배우·조명 등 모두 일체되어 한 호흡으로 가야 가능하다. 중간에 누구라도 삐끗하면 모조리 처음부터 다시 촬영해야 한다. 거장 감독들이 주로 하는 테크닉이다. 영화는 갖은 고난 끝에 어찌어찌 완성한 흑백영화 거미집으로 마무리된다.

송강호에 임수정·오정세·장영남 등 배우 라인업이 좋다. 김 감독과의 인연으로 특별출연한 정우성은 김열의 스승이자 천재 신 감독 역을 맡아 신스틸러로 등극한다. 코미디라 접근성은 좋지만 주제에 있어 호불호가 갈릴 이 영화는 200만 관객이 들어야 손익분기점을 넘긴다. /유청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