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생 말임씨가 말하고 둘째 딸이 글을 덧붙인 자전적 에세이
역사가 ‘히’스토리인 이 세상에서, 1940년에 태어나 84년을 살아낸 여성의 입으로 듣는 인생 이야기는 그 자체로 소중하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잃고 올케에게 시집살이를 당한 이야기, 얼굴도 모르는 가난한 농사꾼에게 시집와 별의별 농사를 지어 다섯 명이나 되는 자식들을 키워낸 이야기,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내느라 이제는 어느 하루 어디 한 군데 안 아픈 날이 없이 ‘간신히’ 살아가는 이야기. 그럼에도 타고난 총명함으로 손주들과 카카오톡을 주고받고, “내가 유튜브에서 봤는데~”라며 말을 시작해 빵 터지게 하는 2023년에 살고 있는 말임씨의 이야기이다.
“그 논 넘겨주고 모고지서 걸어서 온 일을 생각허먼 내가 기가 맥혀. 눈이 와가꼬 땅에 이렇게 쌓였는디 걸어서 집에 온게 어떻게 느 아버지가 미워야지. 그런 것은 남자가 댕김서 처리해야지 내기다 맽기 놓고 내가 이 눈길을 걸어댕기는가 싶은게. 긍게 느 아버지한테 와서 대성통곡을 힜지.”
삶의 무게가 유난히 무겁게 느껴지고 나만 왜 이렇게 힘들까라는 생각이 드는데 SNS에서는 눈만 돌리면 나보다 잘난 사람, 잘사는 사람이 천지인 것 같다. 그런 당신에게 ‘포도시’ 84년을 살아온 말임씨 이야기는 이 세상에 이런 삶도 있다고, 이렇게 살아낸 인생도 있다고 당신에게 위로를 건네며 한 발 내딛을 힘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마치 시골 할머니의 목소리가 음성지원 되는 것 같은 생생한 전라도 사투리는 읽다 보면 저절로 입으로 따라 읽게 된다. 전라도 사투리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잘 안 읽힐 수도 있다. 하지만 질곡의 시간을 견디어 온 말임씨의 눅진한 이야기를 넘어 동시대의 어머니와 자녀들에게도 공감할 만한 다양한 경험들이 사투리를 통해 그대로 녹아 있다. 그 자체로 보존할 가치가 있는 유산이 될 수 있다.
1장에서는 말임씨가 딸만 조르르 셋을 낳고 아들 둘을 낳아 키우며 가난하고 힘든 시절을 지나 오늘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준다. 큰아들을 먼저 보내고 날마다 눈물로 보내야 했던 이야기에 가슴이 저린다.
2장에서는 말임씨가 초등학교 다니던 이야기부터 시작해 한국전쟁 전후 혼란스러웠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처녀 시절 4H 활동을 한 이야기까지 근대사가 오롯이 담겨있다.
3장은 시집와서 아버지와 농사지으며 살아온 아련한 이야기들로 이루어졌다.
4장은 살다 보니 좋은 날도 있었고, 다정하고 듬직한 손주들 덕분에 지금은 “나같이 호강시런 할매 없을 것이여”라며 오늘을 살아가는 말임씨의 못다 한 이야기를 담았다.
실명이 마구 공개되는 솔직하고 사적인 글은 우리 집에서나 옆집에서도 있을 법한 이야기 들이다. 말임씨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어느새 우리 엄마나 할머니의 삶이 저절로 떠오를 것이고 가슴이 저려올 수도 있다. 그러나 이내 따뜻해질 것이다.
☞서명순
농부의 둘째 딸로 태어나 가난한 시골 살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의 든든한 지원 덕분에 사범 대학 영어교육과를 졸업했다. 잘 가르치려는 교사가 되려고 노력하다 보니 수석교사가 되었고,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잘 배우도록 가르칠까 고민하고 연구했다. 3년 전 남동생을 하늘로 떠나보낸 후 더욱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어 30여 년의 보람찬 교직생활을 마쳤다. 그리고 팔순이 넘어 해가 다르게 노쇠해가는 엄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글이나 사진으로 무엇이든지 기록하는 것을 좋아한다. 베란다 정원에서 꽃을 가꾸며 세상도 꽃처럼 아름답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