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을 따라 지워져 가는 순간들 실감 있게 복원”
김혜경 시인의 시편들은 지나간 시간에 대한 그리움을 통해 존재론적 자기 확인의 순간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서정시의 길을 가고 있다. 그녀의 시는 자신이 경험해 온 시간의 흐름을 기억 속에서 재구성하는 일종의 ‘시간 예술’ 속성을 견고하게 갖춘 채, 오랜 상상의 화폭으로 자신만의 내면적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시집 ‘어쩔 수 없는 시’는 이러한 서정시의 특성을 첨예하게 보여주면서, 그 안에 지나온 시간에 대한 열망의 언어와 애잔하고도 아름다운 마음을 충일(充溢)하게 품고 있다. 지난 시절 시인 스스로 겪은 상처와 고통, 그리고 그것들을 향한 한없는 그리움을 동시에 실어 보내고 있는 셈이다.
아닌 게 아니라 김혜경 시인은 불모의 기억을 수습하고 거기에 숯처럼 결정(結晶)된 사랑의 마음을 발화하는 면모를 꾸준히 보여준다. 뭇 존재자들의 슬픔을 불가피한 존재 형식으로 노래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지상의 모든 존재자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는 크나큰 품을 보여준다. 그렇게 그녀는 오랜 기억을 섬세하게 재현하면서, 세월에 따라 지워져 가는 순간들을 실감 있게 복원해 낸다.
이는 그녀가 한결같이 마음의 중심에 사랑의 순간들을 기억하려는 열의를 가지고 있음을 선명하게 알려준다. 따라서 우리는 한편으로는 구체적인 기억의 아름다움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누군가를 향한 연민과 사랑의 마음으로 간단없이 퍼져가는 ‘시인 김혜경’의 언어를 눈부시고 눈물겹게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김혜경
1947년 서울에서 출생했으나 1.4후퇴 시 피난처 청주에 부모님이 정착하시어 해마다 무심천 벚꽃비를 맞으며 자랐으니, 청주가 내 고향이다. 2005년 ‘믿음의 문학’으로 등단한 이후 나름 글 쓰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음악교사 시절 제자들과 청주여고 후배들이 함께 모여 아름다운 화음을 노래하며 매주 시 한 편씩 쓰겠다는 다짐을 아직은 잘 지키고 있으니 그 또한 다행이다. 가슴에 노래와 시를 품고 나는 그렇게 살 것이다. 노래에 살고 시에 살고 토스카의 아리아 같기도 한데, 노년에 이만한 멋짐이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