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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바람

작성자 관리자 날짜 2025-03-05 11:44:51 조회수 7

 

우한용 작가의 그래도, 바람은 소설을 공부하고 창작하는 독자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는 문학론 강의처럼 읽힌다. 어떤 개인의 핍진한 이야기와 진지한 소설 창작론 사이에서 작가가 선택한 방법은 철저히 대화로 회귀하는 것이다. 

일찍이 바흐친(M. Bakhtin)은 소설을 두고서 형식 창조적 이데올로기의 속성을 지닌 양식으로 무수한 대화의 양상이자, 그 자체로 비종결의 장()이라 규정한 적이 있다. 그가 제시한 대화적 서사개념은 소설을 소통론적으로 규정하고자 하는 연구자들에게 굉장한 유혹으로 다가오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듣는 이와 말하는 이 사이의 동시적 소통[對話] 행위로서 소설적 대화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규명하기란 매우 어려운 과업이다. 

바흐친 자신 역시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만을 대화적 서사로 제시하지만, 지금의 독자에게 산문(散文)적 담론인 소설의 모든 것을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번 작품 속 천강월의 강의와 남아진의 상상적 대답 역시 바흐친이 찾던 대화적 서사의 한 양상일지도 모른다. 다성(多聲)적 소설을 찾고자 한 번이라도 고심을 해봤던 독자라면 이번 소설을 통하여 작가 우공이 시도하고자 한 근본 뜻을 어림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중략) 

우공은 근래 끊임없는 서사적 변모를 꾀하였다. 소설의 몸을 바꾸는 시도에서도 소멸하지 않는 서사의 양태(시인의 강(2021))에 주목하였고, 읽음으로써 읽히는 것이 아닌 들음으로써 읽히는 소설 공간(소리숲(2022))을 마련하기도 했다. 한편, 전통의 맥 속에서 새로운 창조를 향한 시도(왕의 손님(2023))를 펼치기도 하였다. 이번 그래도, 바람은 소설 텍스트의 이중성에 대한 작가의 성찰을 매우 도전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소설가로서, 소설교육가로서 평생 고뇌하고 탐구한 그의 적나라한 기억을 가장 우공다운 소설 형식으로 제시하였다. 

서사적 지속과 양식적 변화를 두루 갖춘 소설의 잡종성에 대한 물음, 즉 소설의 본질에 대하여 스스로 답을 찾는 과정에서 작가 우공은 메타픽션의 메타화라는 새로운 방법론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독자는 그래도, 바람이라는 책에 실려 은은하게 퍼지는 서사적 욕망의 바람을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으리라. 텍스트가 만들어낸 소설적 바람을 읽으려 들지 말고 상상하며, 들으려 하지 말고 느껴보기를 권한다. 그러면, 그제야 이 소설이 바람처럼 읽힐 것이다. -호창수(서울대 강사, 문학평론가) 평설 중에서. /저자 우한용, 출판 푸른사상, 발행 2024.12.26 

 

우한용=충남 아산 출생.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국어교육학과 교수, 국어국문학회 대표이사, 현대소설학회 회장, 한국작가교수회 회장, 한국학술단체총연합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다.